장애아동·癌 환자 원한다면… 병원 복도·교회 지하서도 연주하죠

조선일보- Mar 10, 2015

[작지만 강한 강소(强小) NPO] (6) 소외계층 위한 문화공연 NGO '이노비'


지난달 12일 서울삼성병원 암병동 8층. 평소 적막하기만 한 이곳에 4명의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비틀스의 곡 '예스터데이(Yesterday)'가 울려 퍼졌다. 연주는 10평 남짓한 병원 휴게실을 가득 채운 환자와 보호자 40여명의 마음을 울렸다. 두 곡의 앵콜곡이 끝났음에도 아쉬운 마음에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 공연 내내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하던 김창수(71)씨는 "연주 전 곡마다 역사와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니 몰입도가 높더라"면서 "입원한 아내를 간호하느라 병원 안에만 있었는데, 잠시나마 모든 걸 잊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2일 삼성서울병원 암병동에서 이노비 자원봉사 연주자 (왼쪽부터) 김인하, 우미영, 이태인, 이윤하씨가 첼로공연을 하는 모습. / 이노비 제공


이날 첼로를 연주한 김인하(여·37)씨는 서울대, 미국 인디애나 음대를 거쳐 현재 중국 선전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수석을 맡고 있는 유명 연주자. 다른 3명 역시 국내외 내로라하는 첼리스트들이다. 이들은 모두 소외 계층을 위해 문화 공연을 하는 비영리단체 '이노비(Innovative bridge, 이노베이티브브릿지의 준말)' 소속이다. 이노비에는 이렇게 클래식·뮤지컬·재즈·국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음악가 3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모든 공연은 프로보노(Pro bono·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무료로 제공)로 이뤄진다. 지난 8년간 이들이 올린 공연 수만 총 800회. 지난해에만 한국·미국·중국에서 70회의 공연을 진행했다.

"단순히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 관객과 호흡하며 행복을 나눠주는 것이 저희 이노비의 모토입니다."

강태욱(44) 이노비 대표의 말이다. 22년 전 미국 뉴욕대 유학 시절 경험이 이노비 설립의 계기가 됐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분들은 시간적, 재정적 여유가 없어 음악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더군요. 반대로 음대생들은 졸업 후 공연할 곳이 없어 고민이 많았고요. 관객과 연주자를 잇는 다리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6년 10월, 뉴욕에서 '이노비'란 이름으로 비영리단체 인가를 받은 강 대표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11월, 뉴욕 플러싱에서 한인 정신지체 장애아동 가정 240명을 초청한 공연 'Let's Play with Music and Arts(음악과 함께 놀자)'가 첫 시작이었다. 공연의 초점은 장애 아동들에게 맞춰졌다. 디즈니 만화 '미녀와 야수'의 주제곡에 드럼 비트를 넣어 편곡하고, 아이들이 무대 위로 자유롭게 올라올 수 있도록 한 것. 악기 가까이에 귀를 대보고 연주자들 사이를 마구 달리는 등 장애 아동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즐거움을 표현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음악과 뛰어노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엄마들이 감동하는 모습에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첫 공연에서 소원을 풀었죠(웃음)."

이노비는 2013년, 뉴욕에 이어 국내에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국내 활동도 시작했다. 모든 공연을 관객 맞춤형으로 기획, 강 대표와 연주자들은 최소 1~6개월 전부터 공연할 기관 및 관객들을 찾아가 직접 신청곡을 받기도 하며, 고심 끝에 선곡·편곡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연주곡은 물론 무대 의상 디자인과 색깔까지 결정된다. 연주자들은 50분 공연을 위해 최소 서너번 이상 만나 완성도를 높인다. 매회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가는 공연을 선보인 덕분일까. 이노비는 소문을 타고 전 세계에서 공연 요청을 받는 비영리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공연이 프로보노로 이뤄지는 만큼 연주자들을 끈끈하게 묶는 시스템도 중요했다. 이노비는 서너 번 이상 공연에 참여한 연주자들에게 '뮤직디렉터(Music Director)' 자격을 부여한다. 뮤직디렉터들은 공연마다 함께 할 연주자를 정하고, 사전 공연 기획부터 진행까지 총괄 매니저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이 이노비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카네기홀, 예술의전당 등 유명 공연장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이지만, 이노비 소속으로 모일 때 만큼은 병원 복도, 교회 지하 부엌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공연을 올린다. 지난해 서울 한 병원에서 공연할 땐 피아노 건반 하나가 없는 상태로 연주를 마쳤는데, 이날 공연에 감동한 병원장이 원래 짓고 있던 건물에 계획에 없던 공연장을 만들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노비 뮤직디렉터 조해인(여·32) 작곡가는 "별도의 무대 설치나 음향 시설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관객과 호흡하면서 더 큰 감동을 받는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이노비의 다음 목표는 북한 공연"이라고 전했다. "우리와 가장 가깝고도 위로가 필요한 곳이잖아요. 북한 공연을 준비하려고 지난해부터 중국에서 공연을 하면서 자연스레 북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연주가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배우고 있습니다. 관객이 원하는 무대를 만드는 이노비가 곧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 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